대웅보전 삼세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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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-05-28 11:12 조회36회본문
국적/시대 | 조선시대 | 재질 | 목제 | 크기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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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정 |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| 관리자 | 인수내용 |
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다. 17세기 이후 우리나라 불상의 봉안 형식으로 정착하는 중앙의 석가, 향 좌측의 아미타, 향 우측의 약사불 등 삼세불로 구성되어 있다.
중앙에 위치한 석가불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에 왼손은 무릎에서 수평으로 뉘어 2지와 3지를 거의 직각에 가깝게 구부렸다. 향 좌의 아미타불은 중품하생인, 향 우의 약사불은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였으나 약함은 놓여 있지 않다.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를 둥글게 덮은 형식의 편단우견을, 양쪽의 여래상들은 속에 편삼을 입었다.
삼세불은 착의법과 손 갖춤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형상이다. 전체적으로 얼굴이 작고 신체의 비례가 짧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준다. 양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한 번씩 반전되어 접혀져 내려오면서 대의의 끝단을 둥글게 처리한 점이나 양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속도감을 보이면서 양측으로 접혀져 흘러내린 모습, 왼쪽 무릎에 크게 표현된 소매자락 등이 특징적이다.
이 불상과 관련된 복장물은 아직 조사된 바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다. 다만 불상이 봉안된 대웅보전은 각순(覺淳)대사와 공주목사 이태연(李泰淵, 1615-1669)이 1651년에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. 또한 1650~1659년 사이에 마곡사 주지를 지낸 운혜(雲惠)는 당시 이름이 알려진 조각 장인으로 「사적기」에는 그가 편수를 맡았다는 기록도 있어 이 불사에 총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. 따라서 이 삼세불은 17세기 중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.
중앙에 위치한 석가불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에 왼손은 무릎에서 수평으로 뉘어 2지와 3지를 거의 직각에 가깝게 구부렸다. 향 좌의 아미타불은 중품하생인, 향 우의 약사불은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였으나 약함은 놓여 있지 않다.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를 둥글게 덮은 형식의 편단우견을, 양쪽의 여래상들은 속에 편삼을 입었다.
삼세불은 착의법과 손 갖춤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형상이다. 전체적으로 얼굴이 작고 신체의 비례가 짧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준다. 양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한 번씩 반전되어 접혀져 내려오면서 대의의 끝단을 둥글게 처리한 점이나 양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속도감을 보이면서 양측으로 접혀져 흘러내린 모습, 왼쪽 무릎에 크게 표현된 소매자락 등이 특징적이다.
이 불상과 관련된 복장물은 아직 조사된 바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다. 다만 불상이 봉안된 대웅보전은 각순(覺淳)대사와 공주목사 이태연(李泰淵, 1615-1669)이 1651년에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. 또한 1650~1659년 사이에 마곡사 주지를 지낸 운혜(雲惠)는 당시 이름이 알려진 조각 장인으로 「사적기」에는 그가 편수를 맡았다는 기록도 있어 이 불사에 총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. 따라서 이 삼세불은 17세기 중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.